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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00:10
2013. 12. 8. 22:24 생각 메모

원본 글은 여기

http://acase.co.kr/2013/11/22/writinglecture5/

혹시 몰라 밑에 스크랩 해 둠.

왠지 모르지만 나중에 다시 읽고픈 글


음주 글쓰기는 반칙이다.

- 술기운에 글 쓰지 말자

시인 고은은 시 전문지 <시평> 기고 글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이제 시인들 가운데 술꾼이 현저하게 줄었다. 막말로 최근의 시가 가슴에서 터져 나오지 않고 머리에서 짜여져 나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아마 두 대통령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술을 아예 입에 대지 않았다.
직원들도 금주하기를 권했다.
특히 담배 냄새 나는 장관이나 수석들은 자기 관리라는 측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직접 표현은 안했지만, 킁킁 냄새 맡는 시늉으로 엄중한 경고를 보냈다.
그래서 흡연자가 대통령을 뵈러갈 때는 양치질은 물론, 가글까지 하는 게 필수였다.
하물며 술 냄새야.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개방적이었다.
심지어 인수위 직전까지만 해도 당선인과 같이 담배 피우는 것이 허용이 될 정도였다.
임기 초, 대통령과 대단히 가까운 분과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대통령께서 담배를 한 대 무셨다.
그러면서 동석한 연하의 그 분에게 그런다.
“이제는 같이 담배 피우는 것 안 됩니다. 내가 대통령이니까.”
우스갯소리를 한 후, 그래도 미안한지 한 마디 덧붙인다.
“너무 야박하지? 한 대만 피우게.”
이렇게 소탈했다.

대통령은 글 작업을 할 때 담배를 유독 찾았다.
여사께서 회의실에 담배를 갖다 놓지 말라 엄명을 한 터라, 대통령이 담배를 찾으면 회의실 관리하는 직원이 접시에 딱 두 개비만 담아 가져왔다.
그런 제한 역시 여사의 당부가 있었다.
대통령은 두 개비를 다 피우면 꽁초를 잘 펴서 피웠다.
어찌나 정성스럽게 꽁초를 펴든지.
동석한 골초 참모들은 담배가 당겨 침이 꼴깍 넘어 갔다.
회의가 길어져 꽁초마저 없어지면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누구 담배 가진 사람 없나요?”
대통령은 얇은 담배를 피우셨는데, 이렇게 찾을 때는 굵은 것도 상관없었다.

이전 대통령에게는 전매청에서 대통령 전용 담배를 만들어 공급했다.
금색 봉황 휘장이 그려진 담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그 시절에 한 번 본 적이 있다.
물론 담배 품질도 최고 등급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국산 ‘에세’를 사서 피웠다.
라이터도 시중에서 500원에 파는 일회용 플라스틱 라이터를 썼다.
봉하마을 구멍가게 사진에 나온 그 담배와 라이터다.

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노 대통령 역시 술은 멀리 했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한두 잔 거드는 정도였다.
하지만 각종 술의 유래와 제조 방법 등에 관해선 어찌나 해박하던지.
술자리는 대통령의 술 얘기만으로도 흥이 났다.

술 예찬론을 펴는 문인들이 많다.
생각을 발전시키는데 술만큼 좋은 건 없다.
술은 상상의 나래를 펴는 묘약이니까.

하지만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건 문제다.
그건 반칙이다.
청와대 시절 체득한 음주 작문의 폐해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소개한다.

2006년 11월, 독일 유력지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FAZ)의 요청으로 대통령이 “역사는 진보한다. 이것이 나의 신념이다”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준비할 당시였다.
어느 날 오후, 예정에 없이 대통령이 찾는다.
그날따라 점심에 술을 한 잔 했다.
찾아뵈러 가니 부속실 직원이 술 냄새가 너무 난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대통령이 회의실에 오셨다.
한 두 마디 건네시더니,
“오늘은 내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안 되겠다. 다음에 하자.”고 한다.
술 냄새를 맡은 것이다.
하지만 아무 내색을 안했다.
아랫사람 무안할까봐. 아니 문책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어찌나 죄송하든지.

2005년, 제60주년 광복절 경축사를 준비할 때였다.
천신만고 끝에 광복절을 하루 앞두고 연설문 작성이 마무리되었다.
대통령과의 독회만 7~8차례, 서너 개 버전의 연설문이 만들어졌다 지워졌다를 반복했다.

광복절 연설문 준비는 일 년 중 가장 큰 전투다.
남들 바캉스 가는 한여름에 더위와 싸워가며 악전고투해야 한다.
보름 정도를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식욕도 뚝 떨어진다.
오직, 자나 깨나 8월 15일이 어서 오기만을 기다린다.
오죽하면 지금도 광복절이 다가오면 나도 모르게 무언가에 짓눌린 느낌을 받을까.

드디어 그날이 왔다.
8울 14일 저녁 무렵,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계속 붙들고 있으면 끝이 없겠다.”
대통령의 이 한 마디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끝났다는 해방감에 연설비서실 모두 삼청동 술집으로 달려갔다.
소주 두 병 가까이 마셨을 즈음, 대통령의 전화가 왔다.
시간을 보니 밤 10시가 넘었다.
“근데 말이야. 경축사 끝 부분 수정 좀 하세.”
나는 눈빛으로 메모지를 찾았다.
행정관 한 사람이 식당 메모지를 가져 왔다.
한두 마디 할 줄 알고 적기 시작한 것이 40분을 훌쩍 넘었다.
“이렇게 고쳐서 내일 아침 일찍 보세.”
술집을 나와 비서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사무실에 오니 밤 11시가 넘었다.
절대고독!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그랬다.
“사랑하는 아내가 원고지 한 장 대신 써줄 수 없고, 사랑하는 아들도 마침표조차 대신 찍어줄 수 없는 게 글쓰기라고.”
전화는 나 혼자 받았으니, 행정관들은 무슨 말씀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문제는 메모한 것을 보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보겠다.
‘사고 났다. 그것도 일 년 중 가장 큰 연설인 광복절에서 대형사고를 치게 됐군.’
걱정에 앞서 자괴감이 들었다.
‘대통령은 늦은 시간까지 고심 하다 이거다 싶어 전화까지 했는데, 술 먹다가 이 지경이 됐으니.’
글자 해독을 포기하고 창작에 들어갔다.
‘평소 하던 말씀 참고해서 쓰면 되고, 어차피 내일 아침에 고쳐줄 테니까.’

밤을 꼴딱 새우고 7시 전에 관저에서 대기했다.
대통령이 들어왔다.
“왜? 어제 내가 다 불러주지 않았든가.”
“한 번 보자고 하셨습니다.”
“됐다 마. 어련히 알아서 잘 썼을라고. 이제 신물이 난다. 치와뿌라.”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보여드릴 수도 없지 않은가.
사무실로 내려 와 TV를 켰다.
몇 시간 후에 있을 광복절 실황중계를 기다리는 수밖에.
마침내 바로 그 대목, 대통령께서 수정 지시를 했던 연설의 마무리 부분을 읽는다.
나는 원고를 읽는 대통령의 눈빛을 뚫어져라 봤다.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아, 잘못 썼구나.’
하지만 대통령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 후에 여러 차례 뵀지만 광복절 경축사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었다.
‘그렇게 터무니없이 잘못 쓰지는 않았나 보군.’

세월이 흘러 퇴임을 6개월 여 앞둔 오찬 자리.
비서관들과 식사를 하다가 2005년 광복절 얘기가 나왔다.
이러저런 말씀을 하다가 청천벽력 같은 대통령의 한 마디.
“그때 말이야. 다 좋았는데 연설문 꼬랑지가 사라졌어. 분명히 내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었는데.”
그러면서 나를 보셨다.
대통령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른 체 해줬을 뿐.

술 먹고 글 쓰면 안 된다.

강원국 (라이팅 컨설턴트, 객원 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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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골남자